퇴비가 아닌 바이오차(Biochar)! 저탄소 농업을 위한 토양개량제
땅속에 탄소를 묻는 기술, 바이오차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농업은 더 이상 단순한 생산 수단이 아니라,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농업의 토양은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자연 저장소 중 하나이며,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탄소 감축 효과는 천문학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기술이 바로 ‘바이오차(Biochar)’이다.
바이오차는 유기물을 산소 없이 고온에서 태워 만든 ‘탄소 고형물’로, 단순한 퇴비와는 전혀 다른 기능과 구조를 가진다. 이 물질은 수백 년 이상 토양 속에 머물며 탄소를 안정적으로 고정할 수 있어, 탄소저감뿐 아니라 토양 개량 효과까지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바이오차가 어떤 물질이며, 어떻게 만들어지고, 실제 농업 현장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바이오차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바이오차는 나무 조각, 볏짚, 왕겨, 폐과일 등 다양한 바이오매스를 산소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300~700도 사이의 열로 열분해(건류)하여 만든 다공성 탄소 고체물이다. 이 과정을 ‘피이로라이시스(Pyrolysis)’라고 하며, 유기물이 완전히 연소되지 않고 고체 상태의 탄소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는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고, 고체로 남은 것이 바로 바이오차다.
저탄소 농업에 있어 퇴비와 바이오차의 차이점
일반 퇴비는 유기물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토양에 영양분을 공급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이산화탄소로 전환되어 대기 중으로 배출된다(=탄소 발생). 반면 바이오차는 분해되지 않고 수백 년간 토양에 남아 탄소를 고정하는 특징이 있다. 특히 바이오차는 현미경으로 보면 수많은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는 구조로, 토양 내 수분 보유력과 통기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또한 미생물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토양 생태계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처럼 바이오차는 단순한 비료나 퇴비가 아니라, 탄소를 장기 저장하는 기술적 물질로, 농업을 통한 기후변화 대응에 매우 적합한 솔루션이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바이오가스나 합성가스는 재생에너지 자원으로도 활용될 수 있어 에너지-농업-환경의 융합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바이오차의 토양 개선 효과와 작물 생장 촉진 사례
바이오차는 단순히 탄소만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토양의 물리적·화학적 성질을 동시에 개선하는 고기능성 소재이다.
우선, 앞서 언급한 다공성 구조 덕분에 토양의 보수력(수분 유지력)이 대폭 향상된다. 이는 건조한 기후나 배수가 빠른 모래토에서도 작물 생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실제로 제주도 일부 감귤 농가에서는 바이오차를 도입한 이후 감귤의 낙과율이 줄고, 당도가 10% 이상 상승했다는 보고가 있다.
또한, 바이오차는 토양 내 양이온 교환 용량(CEC)을 높여 양분 보유력을 강화한다. 이로 인해 작물이 필요한 영양소를 안정적으로 흡수할 수 있으며, 비료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강원도 평창의 고랭지 채소 농장에서는 바이오차를 투입한 결과, 질소비료 사용량을 30% 이상 감축하면서도 수확량은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이는 비료 사용에 따른 탄소 배출도 함께 줄어드는 구조로 이어진다.
바이오차는 또한 토양 산도(pH) 조절 능력이 탁월해, 산성화된 토양에서도 작물 재배를 가능하게 한다. 산성 토양은 미생물 활성이 낮아 작물 생육에 불리하지만, 바이오차는 완충 작용을 통해 토양 환경을 중성에 가깝게 조절해 준다. 이런 특성은 유기농 재배나 친환경 인증을 추구하는 농가에게 매우 유리하게 작용한다.
바이오차의 탄소 감축 효과와 기후변화 대응 가치
바이오차의 가장 큰 강점은 탄소를 땅속에 장기적으로 격리한다는 점이다. 일반 유기물이 수개월 내에 분해되어 이산화탄소로 전환되는 것과 달리, 바이오차는 수백 년 이상 토양에 안정적으로 머물며 대기 탄소 순환을 차단한다. 학계에 따르면, 1톤의 바이오차를 토양에 적용하면 최대 3.6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는 수십 그루의 나무가 1년 동안 흡수하는 탄소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더불어 바이오차는 기후위기에 취약한 농업 시스템을 복원시키는 데도 효과적이다. 예컨대, 가뭄이 잦은 지역에서는 바이오차의 보습력이 작물 생존율을 높이고, 집중호우가 많은 지역에서는 토양의 배수 기능을 개선하여 침수 피해를 줄여준다. 즉, 기후 리스크를 완화하는 ‘자연기반 해법’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유럽연합(EU)은 바이오차를 ‘탄소 제거 기술’로 공식 분류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바이오차 탄소배출권(BCU, Biochar Carbon Units)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실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제도가 정착된다면 농가 입장에서는 수익 창출 도구로도 활용 가능하다.
바이오차 보급의 한계와 기술적 보완점
이처럼 다방면에서 장점이 있는 바이오차지만, 현장 보급에는 몇 가지 실질적인 장벽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제조 장비의 확보와 비용 문제다. 바이오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온 열분해 장치가 필요한데, 이는 설치비용이 높고 유지 관리가 까다롭다. 특히 농촌 소규모 농가가 자체적으로 제조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두 번째는 농민의 인식 부족이다. 바이오차는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생소한 개념으로, 많은 농민이 퇴비와 동일하게 인식하거나, 효과를 과장된 신기술로 보는 경우도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단위 실증 시범사업과 장기 효과 분석 데이터가 필요하다. 단기 수확량보다는 장기적인 토양 개선, 병해 저감, 탄소저감 효과 등을 수치화해 농민과 공유해야 한다.
또한, 바이오차의 효과는 사용하는 원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나무에서 얻은 바이오차와 볏짚 기반 바이오차는 물리적 특성, pH, 양분 함량이 다르다. 따라서 토양의 특성에 맞는 바이오차 처방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전문가의 진단과 컨설팅 시스템이 보완되어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인프라를 조성하고, 바이오차를 활용한 탄소 감축량을 인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