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도 탄소를 저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지속가능한 농업이 요구되는 시대, 우리는 이제 ‘무엇을 심을 것인가’에 대해 단순히 수확량이나 시장성만이 아니라 탄소 저감 효과까지 고려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이를 생장에 활용하면서 일정량의 탄소를 뿌리, 줄기, 잎, 열매 속에 저장한다. 하지만 모든 작물이 같은 수준의 탄소 흡수 능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작물의 생장 속도, 뿌리 깊이, 생체량, 재배 방식에 따라 탄소 저감 능력은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작물 선택 자체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탄소를 많이 흡수하거나 토양 내 저장 효과가 큰 작물들을 중심으로, 작물 선택이 농업의 탄소 중립 실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식물의 원리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CO₂)를 유기물로 전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 과정은 생장과정 내내 일어나며, 잎과 줄기, 뿌리, 과실에 유기탄소 형태로 저장된다. 일부는 다시 호흡 작용을 통해 대기 중으로 방출되지만, 전체 생체량 중 일정 비율은 탄소로 저장되어 남는다. 특히 뿌리와 토양 내 미생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탄소가 토양 유기물 형태로 고정될 경우, 수년에서 수십 년간 탄소를 저장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변수는 작물의 생체량(Biomass)이다. 생체량이 많을수록 광합성으로 고정된 탄소의 총량도 많아지고, 그만큼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해 저장하는 효과도 커진다. 또한 뿌리가 깊고 굵은 작물일수록 지하에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할 수 있으며, 줄기가 단단하고 목질화된 작물은 수확 후에도 일정 기간 탄소를 고정한 채로 남게 된다.
이와 같은 원리로 인해 작물의 선택과 재배 방식은 토양 탄소량 변화에 직결된다. 같은 면적이라도 어떤 작물을 심느냐에 따라, 탄소 배출원이 될 수도 있고, 탄소 흡수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탄소 흡수 능력이 높은 대표 작물들
탄소 흡수량이 높은 작물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사료용 옥수수, 수수, 밀, 귀리와 같은 곡류 및 사료작물이다. 이 작물들은 생체량이 크고 뿌리 발달이 강해, 토양에 남기는 유기물 함량이 높다. 특히 수확 후에도 잔사(줄기, 뿌리)가 토양 내에서 탄소를 지속적으로 저장하는 효과를 갖는다.
그중에서도 알팔파(Alfalfa)는 뿌리가 2~3미터까지 자라며, 지하 탄소 고정 효과가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팔파는 다년생 작물로 매년 갈아엎지 않아도 되며, 이 점에서 경운이 줄어들어 토양 유기탄소 손실을 막는 이점도 있다. 실제로 북미에서는 알팔파를 전략 작물로 재배해 탄소크레딧 프로그램과 연계하기도 한다.
또한, 유채, 해바라기, 들깨와 같은 유지작물 역시 탄소 흡수력이 높다. 이들 작물은 광합성 효율이 높고, 바이오에너지 원료로도 활용되기 때문에 이중의 탄소 절감 효과를 가진다. 유지작물은 수확 후 잔사 처리 시 바이오차 또는 퇴비로 전환이 용이하며, 이 과정에서도 탄소를 다시 토양에 고정할 수 있다.
최근에는 콩, 녹두, 완두콩 등 질소 고정 작물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공기 중 질소를 뿌리혹박테리아와 함께 고정해, 토양 비료 투입량을 줄일 수 있다. 비료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아산화질소를 줄일 수 있어 간접적인 탄소 감축 효과가 매우 크다.
다년생 작물과 덮개 작물(Cover Crop)의 탄소 저장 효과
일반적으로 다년생 작물은 연작 작물에 비해 탄소 고정 효과가 크다. 이유는 간단하다. 매년 땅을 갈아엎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토양 교란이 적고 유기탄소 손실이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블루베리, 아로니아, 사과나무 같은 과수류는 수확이 끝난 후에도 수년간 동일한 뿌리 구조를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광합성을 수행하고 탄소를 저장한다.
또한 최근 유럽과 북미에서 주목받는 기술은 바로 덮개 작물(Cover Crop)의 활용이다. 덮개 작물이란 수확 작물과 작물 사이에 심어지는 보조 작물로, 토양 보호 및 탄소 고정을 목적으로 사용된다. 대표적인 예로는 클로버, 귀리, 호밀 등이 있으며, 이들은 생육 기간 동안 광합성과 뿌리 발달을 통해 토양 유기탄소를 증가시킨다.
특히 이들 덮개 작물은 겨울철이나 비수기에 경작지를 덮어 토양 유실을 방지하고, 유기물 함량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덮개 작물 도입 시 3년 이내 토양 내 유기탄소 함량이 15% 이상 증가하며, 1헥타르당 연간 1톤 이상의 이산화탄소 저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일부 유기농 인증 농가들이 겨울철 귀리나 클로버를 심어 토양을 살아있는 생태계로 유지하고 있으며, 이 같은 사례는 유기농+저탄소 농업 모델의 접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물 선택에 따른 탄소 배출량의 차이
같은 작물이라도 품종, 재배 기간, 방식에 따라 탄소 발자국(탄소배출 총량)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고구마와 감자를 비교하면 생산단위당 탄소 배출량에서 감자가 더 낮다. 감자는 짧은 생육 기간, 낮은 비료 투입, 높은 생체량으로 상대적으로 탄소 저감에 유리하다. 반면 고구마는 수확 시 토양 교란이 심하고, 덩굴 제거에 연료를 소모해 탄소배출이 높을 수 있다.
또한 온실 재배 작물(예: 토마토, 오이)은 에너지 투입량이 많기 때문에, 아무리 탄소를 흡수해도 전체 시스템상 탄소 발자국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노지에서 자라는 시금치, 배추, 무와 같은 작물은 저에너지 구조에서 자라기 때문에 탄소 감축형 작물로 분류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배추 1kg 생산 시 탄소 배출량은 약 0.11kg, 반면 온실 토마토는 1kg당 2.5kg 이상의 CO₂를 배출한다. 이런 차이는 작물 선택이 단순한 수익성 판단이 아닌, 환경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 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향후에는 ‘기후 친화형 작물 목록’ 또는 저탄소 인증 품종 리스트가 개발되어, 농가가 탄소중립 목표에 맞는 작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저탄소 작물 기반의 농업 전환 전략
작물 선택만으로 탄소 저감 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체계적인 전략이 함께 필요하다.
첫째는 토양 분석 기반 작물 매칭이다. 농지별로 탄소 보유력과 유기물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토양 상태에 따라 가장 적합한 탄소 흡수형 작물을 선택해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둘째는 작물 순환과 혼작(혼합재배) 전략이다. 예를 들어, 질소 고정 작물과 생체량 높은 곡물을 번갈아 심으면 토양 내 탄소 저장과 질소 공급이 균형을 이루게 된다. 이는 비료 사용량을 줄이고 작물의 생장 안정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
셋째는 작물-기후 대응형 재배 달력 설계다. 탄소 흡수량은 작물의 생장 시기와 밀접하게 연관되므로, 지역 기후에 따라 광합성이 가장 활발한 시기에 생육이 집중되는 품종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는 저탄소 작물에 대한 경제적 인센티브 체계 구축이다. 저탄소 작물 재배 농가에 대해 탄소 감축 인증을 부여하고, 감축량에 따라 보조금 또는 배출권을 지급하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작물 선택이 경제적 유인이 될 수 있다.
농업에서 탄소를 줄이는 방법은 거창한 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씨앗을 심을지 결정하는 순간, 이미 기후 대응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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