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 농업

농업 탄소 감축을 위한 토양 미생물 활용 기술

graycia 2025. 7. 20. 04:00

토양 미생물은 보이지 않는 탄소 저감의 열쇠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농업의 최전선에는 종자, 기계, 비료 같은 눈에 보이는 기술들이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토양 미생물’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탄소 감축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농업 탄소 감축을 위한 토양 미생물 활용

 

토양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지구 최대의 탄소 저장소 중 하나이며, 그 기능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토양 속 수많은 미생물들이다. 이들은 유기물 분해, 탄소 고정, 질소 고정, 메탄 산화 등 다양한 생화학 반응을 통해 토양 내 탄소 순환을 제어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토양 미생물을 정밀하게 조절하고 활용하는 기술이 등장하면서, 농업의 탄소 감축 전략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토양 미생물이 탄소 감축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를 활용한 실제 기술과 사례는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과 과제를 자세히 살펴본다.

 

토양 미생물과 탄소 순환의 관계

토양은 살아 있는 생태계이며, 그 중심에는 미생물이 존재한다. 토양 미생물은 유기물 분해, 무기화, 질소 고정, 메탄 산화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며, 이 과정에서 탄소의 흡수와 방출을 동시에 담당한다. 광합성을 통해 식물이 흡수한 이산화탄소는 잎과 줄기를 거쳐 뿌리로 이동하고, 뿌리에서 분비되는 유기물은 미생물의 먹이가 된다. 이러한 작용은 탄소가 토양 내에 유기물 형태로 고정되는 메커니즘의 핵심이다.

특히, 외생균근균(mycorrhizal fungi)과 토양 박테리아는 토양 유기탄소의 안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생균근은 식물의 뿌리와 공생하며 탄소를 흡수하고, 이를 균사체 내에 장기간 저장할 수 있다. 또한 특정 세균은 토양 내에서 메탄을 산화시켜 메탄가스를 줄이는 역할도 한다.

중요한 것은 미생물의 종류와 활성 정도에 따라 토양의 탄소 저장 능력이 급격히 달라진다는 점이다. 건강한 토양은 다양한 미생물이 공존하며, 이들이 복합적인 생태적 네트워크를 통해 탄소를 안정화시킨다. 반면 농약 과다 사용, 과도한 경운, 화학비료 중심의 재배 방식은 미생물 다양성을 떨어뜨리고, 토양의 탄소 저장 능력을 저하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탄소 감축을 위한 미생물 기반 기술들

최근 농업 분야에서는 토양 미생물의 기능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거나 강화하는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생물 비료(biofertilizer)와 미생물 개량제(soil amendment microbes)이다. 이들은 단순히 질소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탄소 고정과 유기물 안정화에 특화된 균주들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Bacillus subtilisPseudomonas fluorescens는 식물의 뿌리에서 분비되는 유기산을 빠르게 흡수하고, 이를 미생물 대사산물 형태로 전환하여 토양 내 장기 저장 가능한 탄소 구조를 형성한다. 또한, 이 균주들은 토양 구조를 개선해 산소 유입이 원활해지도록 도와주며, 혐기성 메탄 생성 미생물의 활동을 억제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아래 표는 이 균주들의 분류, 주요 기능, 탄소 감축 방식 등을 요약한 내용이다.

항목 Bacillus subtilis Pseudomonas fluorescens
세균 분류 그람 양성 간균 그람 음성 간균
주요 기능 항균 작용, 생장촉진, 탄소 안정화 질병 억제, 인산 가용화, 스트레스 완화
탄소 감축 방식 메탄 생성 억제, 탄소 저장 유기물 분해 억제, 고정성 탄소 형성
적용 작물 예시 벼, 배추, 감자 토마토, 고추, 상추, 콩류
작용 위치 근권 전체 및 잔사 표면 뿌리 표면(리조스피어)

 

또 하나의 주목할 기술은 탄소 고정 미생물 접종(Carbon-sequestering microbial inoculant)이다. 이는 고유의 탄소고정 능력을 가진 미생물을 직접 토양에 투입하는 기술로, 토양 유기물의 분해 속도를 조절하고 보다 안정적인 형태로 탄소를 축적하는 효과를 유도한다.

최근에는 AI 기반 미생물 생태계 분석 기술도 도입되어, 토양 샘플을 채취하면 미생물 군집과 탄소 관련 기능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그에 맞는 미생물 솔루션을 제안하는 기술도 등장했다. 이는 농민이 자신의 토양에 가장 적합한 미생물 조합을 선택하고, 정밀하게 탄소 감축 농법을 설계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토양 미생물의 현장 적용 사례: 국내외 실증과 성과

국내에서는 2021년부터 농촌진흥청 주관으로 ‘토양 탄소중립 시범사업’이 시작되어, 일부 농가에 미생물 개량제를 적용한 결과가 보고되었다. 충청북도 괴산군의 한 채소 농가는 탄소 고정 미생물 접종제와 유기질 비료를 혼용해 사용한 결과, 토양 유기탄소 함량이 2년 만에 1.1%에서 2.4%로 상승했다. 이는 같은 면적에서 연간 약 3.1톤의 이산화탄소를 추가로 저장한 수치다.

또한 강원도 평창의 고랭지 배추 농장에서는 메탄 산화 박테리아가 포함된 토양 생균제를 살포한 뒤, 기온 상승에도 불구하고 토양 메탄 배출량이 기존 대비 42%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특정 미생물이 메탄 생성 환경을 직접 조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재생농업 단지에서는 Arbuscular Mycorrhizal Fungi(AMF)를 대량 접종해 토양 유기탄소를 연간 5톤 이상 축적하고 있으며, 이 데이터는 탄소배출권 거래에도 활용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는 ‘탄소 저장형 작물 + 미생물 개량제’ 패키지를 인증 기반으로 확대하며, 농가의 탄소 감축 실적을 제도적으로 보상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토양 미생물이 단순한 영양제 수준을 넘어, 탄소중립 농업의 실질적인 실행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입증한다.

AMF의 주요 특성과 농업에서의 역할

생물학적 분류 균류(Fungi) > Glomeromycota문 > AMF(Arbuscular Mycorrhizal Fungi)
주요 서식지 식물 뿌리 근권 내부 (arbuscule 형성)
주요 작용 구조 아버스큘(arbuscule) – 뿌리 세포 내부에서 양분 교환 기능 수행
식물과의 관계 상리공생 (식물 ↔ 균류 서로 양분 교환)
식물에 주는 이점 인산, 아연, 칼슘, 미량원소 흡수력 향상 / 병해 저항성 증가
탄소 고정 기여 방식 광합성 탄소를 균사체에 저장 → 토양 유기탄소로 전환
탄소 고정 지속 기간 수개월 ~ 수년 이상 (균사체 및 글로말린* 형태로 장기 저장)
친환경 농법과의 궁합 보존농업, 무경운, 유기농법과 가장 높은 적합성
한계 및 조건 경운이 심하거나 토양 내 화학 잔류물이 많으면 AMF 활성 저하
대표 적용 작물 밀, 옥수수, 대두, 토마토, 양파, 완두콩, 고구마 등
* 글로말린(glomalin): AMF가 분비하는 안정적 단백질로, 토양 탄소 고정의 핵심 성분

 

미생물 기술 확산의 한계와 보완 과제

토양 미생물 기술이 탄소 감축에 효과적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확산에는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

첫 번째는 토양 생태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농민 다수는 미생물의 기능을 직접 경험하거나 측정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고 신뢰도가 낮은 편이다.

두 번째는 기술의 지역 맞춤성 부족이다. 미생물은 토양 온도, 습도, 산도, 유기물 함량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는 위험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표준화된 제품보다는 맞춤형 솔루션 제공이 필요하지만, 이를 위한 기술 인프라가 아직 부족하다.

세 번째는 경제성 문제다. 미생물 접종제나 개량제는 일반 화학비료보다 가격이 높으며, 즉각적인 수확량 증가와 직결되지 않기 때문에 농가 입장에서는 도입 부담이 크다. 이에 따라 정부의 보조금 지원이나 탄소 감축 실적에 대한 인센티브 체계가 필수적이다.

네 번째는 측정 기술과 인증 제도의 미비다. 미생물을 적용해 탄소가 얼마나 저장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보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체계가 없다면, 농가는 단순한 비용 증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업기술센터의 전문 컨설팅 강화, 탄소감축 미생물 등록제 및 인증제 도입, 탄소저감 실적의 디지털 추적 시스템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미래를 위한 전략: 미생물 중심의 저탄소 농업 생태계 구축

토양 미생물 기반 탄소 감축 기술은 단순한 농법을 넘어서, 농업의 생태적·경제적 구조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국가 차원의 ‘토양 마이크로바이옴 지도’ 구축이다. 전국 농경지의 미생물 분포와 탄소 저장 특성을 분석하여, 지역별 맞춤형 미생물 활용 전략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미생물 스타트업과 농업 기업 간의 협업 생태계 조성이 중요하다. 농업기술은 더 이상 전통 농민의 몫이 아니라, 바이오와 데이터가 결합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농업용 미생물의 품질 인증, 공급 체계, 지자체 연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셋째, 교육과 인식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농민들이 토양 미생물의 가치와 기능을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는 데 익숙해지도록 교육 프로그램, 실습 농장, 영상 콘텐츠 등 다양한 형태의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탄소 감축 실적의 화폐화 구조 마련이 핵심이다. 미생물 기술로 탄소를 줄였을 경우 이를 공식적으로 인증하고, 탄소배출권으로 전환하거나 보조금 형태로 환원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농민의 실질적 참여가 확대된다.

보이지 않는 존재인 토양 미생물이야말로 농업을 탄소중립으로 전환할 가장 강력한 파트너다. 이제 우리는 그 가능성을 기술과 정책으로 실현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