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 농업

에너지 자립형 저탄소 농장 만들기: 태양광 패널과 농업의 만남

graycia 2025. 7. 20. 15:00

농장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시대가 왔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이 농업의 미래를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농업이 에너지 소비의 종착지였다면, 이제는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고 활용하는 ‘에너지 자립형 농장’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태양광 패널(Solar PV, Photovoltaic) 기술은 농장의 옥상, 비가림 시설, 유휴 토지 위에 설치돼 전력을 생산하는 동시에 농작물과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농업 모델을 만들고 있다. 이 기술은 단순한 전기 공급을 넘어, 온실가스 감축, 운영비 절감, 스마트 농업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이점을 제공한다.

이 글에서는 태양광과 농업이 결합하는 방식을 ‘영농형 태양광’ 중심으로 살펴보고, 에너지 자립형 농장이 실제로 어떻게 구축될 수 있는지, 기술적 요소와 정책 과제까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에너지 자립형 저탄소 농장 태양광 패널과 농업

 

영농형 태양광의 개념과 기술 구조

영농형 태양광(Agrophotovoltaics, APV)은 농지 위에 태양광 모듈을 설치하면서 동시에 농작물을 재배하는 시스템이다. 즉, 하나의 공간에서 전기 생산과 식량 생산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조다. 일반적으로 태양광 모듈은 일정 높이(2~4m)에 설치되고, 모듈 간 간격이나 배치 각도를 조절해 지면의 일사량을 일정 수준 유지하면서 농작물이 자라도록 설계된다.

이 기술의 핵심은 광자원 공유(dual-use) 개념에 있다. 농작물이 필요한 만큼의 빛을 받도록 하면서, 남는 태양광은 전력으로 변환한다. 특히 차광을 선호하는 작물(상추, 시금치, 깻잎 등)에는 오히려 생육 환경이 개선되는 경우도 있다.

태양광 모듈에서 생성된 전력은 농장 내 양액 공급 시스템, 스마트 관개, 온실 냉난방, 저장 시설 운영 등에 직접 활용되거나, 잉여 전력은 한전에 판매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에너지 자립은 물론, 추가적인 수익원 창출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작물별 광요구도, 지역별 일사량, 구조물의 설치 안전성 등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다. 농지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농업 생산성을 유지하며 전력을 생산하는 것이 영농형 태양광 기술의 핵심 조건이다.

 

에너지 자립형 농장의 구조와 구성 요소

에너지 자립형 농장은 단순히 태양광 패널만 설치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비로소 완전한 자립형 시스템이 구성된다.

태양광 패널 농지 위 또는 온실 지붕 등에 설치되어 전기 생산
인버터 태양광으로 생산된 직류 전기를 교류로 변환
에너지저장장치(ESS) 생산된 전기를 저장해 필요할 때 사용 (야간, 흐린 날 등)
스마트 센서 온도, 습도, 토양 수분 등 자동 모니터링 및 제어
스마트 관개·양액 시스템 전력 기반으로 자동 운영, 에너지 낭비 없이 작물 관리
에너지 모니터링 시스템 실시간 전력 생산·소비 데이터 관리 및 효율성 분석

이러한 구성 요소는 IoT(사물인터넷), AI 기술과 연동될 수 있어 에너지뿐 아니라 농업 데이터 기반의 정밀 농업 실현까지 가능하다. 또한, 전력 수요를 시간대별로 예측해 ESS를 통해 피크타임 전력요금을 회피하는 전략도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전기 냉난방 장치나 수경재배 장비가 필수인 온실 작물 재배에서는 자립형 에너지 인프라의 유무가 수익성과 직결되며, 이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지속가능한 농업 시스템으로 전환되는 출발점이 된다.

 

실제 적용 사례와 성과

국내에서는 2020년부터 전라남도, 충청북도, 경상북도 등에서 영농형 태양광 실증단지가 조성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수익성과 환경성 모두 입증된 사례들이 등장하고 있다.

전남 나주시의 한 고추 농가는 3kW 태양광 시스템을 설치한 결과, 연간 약 4,000kWh의 전기를 생산했으며, 이 중 일부는 스마트 관개와 선풍기 가동에 사용, 나머지는 전력판매로 연간 60만 원 이상의 추가 수익을 올렸다. 기존보다 전기료는 90% 절감되었고, 고추 수확량은 오히려 차광 효과로 7% 증가했다는 보고도 있다.

경북 상주의 포도 농가에서는 태양광과 ESS를 연계한 냉장 저장고 운영을 통해 한여름 전기요금 급등 문제를 해결했다. ESS는 태양광 전력을 주간에 저장하고 야간에 분산 공급함으로써 전력 요금 절감 + 온도 유지 안정성 확보라는 이중 효과를 보여주었다.

해외에서도 일본, 독일, 미국 등에서 영농형 태양광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 2022년 기준 1,000곳 이상의 농장에서 영농형 태양광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독일은 태양광 발전을 ‘농업 기반 탄소 감축 수단’으로 공식 인정해 정부 보조금과 탄소배출권 연계 정책까지 도입한 상태다.

 

기술적·제도적 과제와 한계

에너지 자립형 농장의 확대를 위해선 몇 가지 중요한 과제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농지법의 제약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농지를 비농업 목적으로 사용하는 데 제한이 있으며, 태양광 설치가 일시 사용허가 대상에 포함되지만, 지역마다 해석이 상이해 농가 입장에서는 법적 불확실성이 크다.

두 번째는 경제성 판단의 어려움이다. 태양광 설치 초기비용은 여전히 높고, 수익성 확보까지는 5~8년의 회수기간이 필요하다. 또한 소규모 농가는 이 초기 투자에 대한 부담이 크며, 설치 후 전력 판매 단가나 ESS 운영비용 등도 수익성에 영향을 미친다.

세 번째는 작물 적응 문제다. 모든 작물이 태양광 아래에서 잘 자라지는 않으며, 광요구도가 높은 작물(예: 고추, 토마토, 사과)은 수확량이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작물별로 설치 각도, 모듈 간격, 차광율 등을 조절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기술 매뉴얼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외에도 태풍·눈 등의 자연재해 시 구조물 손상 위험, 패널 오염에 따른 효율 저하, 지역 주민과의 조망권 갈등 등도 현실적인 고려 요소다.

 

지속 가능한 확산을 위한 정책 전략

에너지 자립형 농장이 지속 가능하게 확산되기 위해서는 기술과 제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첫째, 정부는 영농형 태양광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과 설치 매뉴얼을 제공해야 한다. 현재는 지역별로 기준이 상이하고, 지자체마다 허가 절차가 달라 농민이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다. 중앙정부 차원의 표준화된 설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둘째, 소규모 농가를 위한 초기 투자 지원제도가 필요하다. 태양광 설치비, ESS 구입비,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비 등을 국비 + 지방비 매칭으로 지원하는 구조가 현실적이다. 동시에, 전력 판매 수익 예측 모델을 제공하여 농가가 재무적으로도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작물별 태양광 적응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시급하다. 다양한 작물에 대해 광요구도, 차광 반응, 수확량 변화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농가가 품종 선택부터 구조 설계까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탄소 감축과 연계한 인센티브 제도가 필요하다. 태양광 기반의 농장 운영이 단순한 에너지 절감이 아닌,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증빙할 수 있도록 디지털 계량 시스템을 적용하고, 이를 통해 탄소 크레딧으로 환산하거나 저탄소 인증 농산물로 라벨링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