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을 넘은 ‘회복’ 중심의 농업으로
기후위기 대응이 전 지구적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농업 부문 역시 단순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넘어서, 생태계 복원을 핵심 가치로 삼는 ‘재생농업(Regenerative Agriculture)’이 대안 농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기존의 저탄소 농법이 ‘피해를 줄이는’ 접근이었다면, 재생농업은 탄소를 저장하고 생물 다양성을 높이며, 토양과 지역사회를 회복시키는 적극적 기후해법으로 작동한다.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곡물 생산지부터 소규모 가족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장에서 적용되고 있으며, 실제로 탄소 격리 효과와 작물 수확량 향상까지 동시에 달성하는 사례도 다수 보고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재생농업의 핵심 원칙을 단계별로 정리하고, 탄소 감축에 기여하는 구체적인 실천 방식과 국내외 적용 사례를 중심으로 저탄소 농업 전략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재생농업이란 무엇인가?
재생농업(Regenerative Agriculture)은 토양, 물, 생물다양성 등 생태계를 단순히 유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오염된 자원과 훼손된 환경을 회복(repair)시키는 농업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었으며, 최근에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탄소농업(Carbon Farming)’의 핵심 방법론으로 주목받고 있다.
재생농업의 가장 큰 특징은 농업 활동이 온실가스를 줄이는 동시에, 대기 중 탄소를 토양에 고정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는 점이다. 전통적 유기농이 투입재를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재생농업은 생물학적 순환과 토양 미생물 활성, 생태적 다양성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재생농업의 대표적 실천 항목은 다음과 같다:
- 무경운 또는 최소 경운(No-till or Reduced Tillage)
→ 경운으로 인한 토양 탄소 방출을 최소화 - 커버 크롭(Cover Crop, 피복 작물) 사용
→ 광합성 작물을 지속적으로 심어 탄소를 흡수하고 뿌리로 고정 - 혼작 및 윤작(Diverse Crop Rotation)
→ 생물 다양성과 토양 건강 강화 - 가축 방목 연계(Grazing Integration)
→ 유기물 순환과 토양 생태계 균형 유지 - 합성비료 최소화 및 미생물 활용
→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탄소저감형 비료와 박테리아 적용
이러한 실천 방식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탄소를 토양 내로 격리(Carbon Sequestration)하는 능동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재생농업의 원칙과 탄소 감축 구조
아래 표는 재생농업의 핵심 원칙과 그에 따른 탄소 감축 효과를 요약한 것이다.
원칙 | 설명 | 탄소 감축 효과 |
No-till 무경운 | 경운 최소화로 토양 탄소 방출 억제 | CO₂ 방출 억제 (최대 30% 감소) |
커버크롭 사용 | 피복작물로 광합성 활성화, 뿌리 탄소 고정 | 토양 유기탄소 증가 (연 0.5~1톤/ha) |
윤작 및 혼작 | 작물 다양성으로 토양 질소 순환 최적화 | 질소비료 의존도 감소 |
미생물 기반 비료 활용 | Bacillus subtilis, AMF 등 유익 미생물로 토양 활성화 | CH₄, N₂O 등 비이산화탄소 감축 |
방목 축산 통합 | 가축 분뇨의 순환 활용 + 잡초 억제 기능 | 방목지 탄소 저장 가능 |
이러한 원칙들은 토양의 유기물 함량을 높이고, 식물의 생리적 탄소 흡수량을 최대화함으로써 농업의 ‘탄소 소싱(carbon sink)’ 전환을 실현하는 구조를 만든다.
또한, 탄소감축뿐 아니라 물 보유력 증가, 병해 저항성 향상, 생물 다양성 확대 등 부가적 효과도 함께 기대할 수 있다.
재생농업의 국내외 적용 사례
1. 미국과 유럽
재생농업은 이미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다양한 실증 사례를 통해 성과를 입증하고 있다.
① 미국 – “Kiss the Ground” 농장 프로젝트
캘리포니아 지역의 재생농업 협동조합은 4년간 무경운, 커버크롭, 바이오차 도입을 통해
- 토양 유기탄소 1.3% 증가
- 연간 2.5톤/ha의 CO₂ 격리
- 옥수수 수확량 9% 증가
② 독일 – 바이오다이나믹(Biodynamic) 농장 사례
독일 남부의 한 와인 농장은 재생농법을 도입한 후,
- 포도당 1병당 탄소배출량 32% 감소
- 미생물 다양성 2.1배 증가
이처럼 재생농업은 단순한 ‘친환경’이 아닌, 생산성과 환경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전략으로 작동하고 있다.
2. 한국 내 실험과 확산 가능성
한국에서도 최근 재생농업 개념이 지자체 및 유기농 단체를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① 충남 홍성 – 무경운 벼농사 실험
홍성의 한 친환경 농가는 3년간 무경운 재배와 벼짚 환원을 통해
- 논 내 유기탄소 함량 0.8% → 1.4% 증가
- 메탄 배출량 37% 감소
- 병충해 약제 사용 횟수 40% 감소
② 전북 완주 – 커버크롭+혼작 실증
귀리와 클로버를 윤작한 완주의 유기농 밭에서는
- 질소비료 사용량 50% 절감
- 토양 침식률 감소
- 수확 후 잔사 자가 퇴비화 구조로 순환 완성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재생농업에 대한 개념적 혼동과 기술 매뉴얼 부족이 걸림돌이다. 이에 따라, 기술지침 보급, 시범사업 확대,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이 병행돼야 본격적 확산이 가능하다.
재생농업의 저탄소 전환 전략과 향후 과제
재생농업이 저탄소 농업으로서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① 계량 기반 탄소 인센티브 도입
토양 탄소 증가량을 디지털 탄소계량기(Carbon Monitoring Tool)로 정량화하고, 이를 탄소 크레딧이나 직불금과 연계하는 구조를 도입해야 한다.
② 지역 맞춤형 기술 매뉴얼 개발
작물별, 토양별, 기후별로 재생농업 적용 모델이 달라야 하므로, 지역 기반 연구와 기술 표준화를 병행해야 한다.
③ 교육과 인증 시스템 확대
농민 대상의 재생농업 인증제와 교육 이수 프로그램을 통해 현장 이해도를 높이고, 소비자에게는 ‘재생농산물 인증 마크’를 부여해 시장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④ 다부처 정책 통합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탄소중립위원회 등 부처 간 연계를 통해 기후 대응형 농업 정책을 통합적 구조로 재설계해야 한다.
재생농업은 단순한 농법이 아니라, 농업을 기후해결 주체로 전환시키는 시스템적 접근 방식이다. 농업이 탄소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저장하는 활동이 되려면, 이제는 생태 복원 기반의 재생 전략이 중심에 있어야 할 시점이다.
농업의 탄소 발자국을 되돌리는 ‘재생의 힘’
재생농업은 기후위기 시대의 농업이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방향이다. 토양을 살리고 생태계를 복원하면서, 동시에 탄소를 흡수하고 작물의 수확성을 높이는 ‘이중 효과’를 제공하는 혁신적 농업 패러다임이다.
저탄소 농업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 원리를 되살리는 데에 있으며, 이를 실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 바로 재생농업이다. 이제는 더 많은 농가와 지역이 이 시스템에 참여하여, 농업이 기후위기의 원인이 아닌 해결책이 되는 시대를 실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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