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 농업

친환경 농업의 두 갈래 길: 저탄소 농업과 유기농업

graycia 2025. 7. 18. 13:00

저탄소 농업 vs. 유기농업 - 같은 말 같지만 다른 길

최근 농업 분야에서 자주 들리는 두 가지 용어가 있다. 바로 ‘저탄소 농업’과 ‘유기농업’이다. 두 개념 모두 환경을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현하겠다는 공통된 목적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출발점도, 실행 방식도, 평가 기준도 확연히 다르다.

친환경 농업 저탄소 농업과 유기농업

 

많은 사람들이 유기농업이 곧 저탄소 농업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두 농법은 서로 다른 전략과 가치에 기반한 독립적인 농업 체계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 식품 안전성, 인증 제도 등에서 각기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농민과 소비자 모두 그 차이를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저탄소 농업과 유기농업의 정의부터 차이점, 실천 전략, 그리고 각각이 가진 장단점까지 구체적으로 비교하고 분석해본다.

 

개념 비교: 탄소 감축 vs. 화학물질 배제

저탄소 농업은 말 그대로 농업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 농업 방식이다.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메탄(CH₄), 아산화질소(N₂O) 등 온실가스 전반의 배출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 핵심은 ‘기후변화 완화’이며, 이를 위해 비료 절감, 스마트 관개, 에너지 절약, 작물 순환, 바이오차 사용 등의 다양한 기술을 활용한다.

반면 유기농업은 농약, 화학비료, 유전자변형작물(GMO) 등 인공적인 농업 자재의 사용을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자연 친화적인 방식으로 식품을 생산하는 농업 체계다. 중심에는 토양 생태계 보존과 식품 안전성 확보가 있으며, 유기물 중심의 토양 관리, 천적을 이용한 병해충 방제, 윤작 등이 실천 방안으로 포함된다.

즉, 저탄소 농업은 온실가스 배출량이라는 수치적 결과에 집중하고, 유기농업은 화학물질 사용 여부라는 절대적 기준에 집중한다. 두 농법 모두 환경을 생각하지만, 환경을 해석하는 관점과 접근 방식이 서로 다르다.

 

실천 방식의 차이: 기술 중심 vs. 원칙 중심

저탄소 농업은 기술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예를 들어 드론을 이용해 정밀하게 비료를 살포하거나, 스마트 센서를 활용해 관개 시기를 조절하는 등 데이터 기반의 ‘정밀 농업’이 핵심이다. 또한, 농기계의 전기화, 바이오에너지 활용, 퇴비화 시스템 등 기술과 에너지 전환을 중심으로 한 전략이 중심이 된다. 정부의 탄소 감축 목표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감축 수치를 계산하고 이에 따라 보상 체계를 설계하는 구조도 갖는다.

반면 유기농업은 ‘기술’보다는 ‘윤리’와 ‘철학’에 기반한 농법이다. 아무리 에너지 효율이 좋아도 화학비료나 합성농약이 들어간다면 유기농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따라서 유기농은 지속가능성과 생태보존을 근본 원칙으로 삼으며, 그 실천 수단도 전통 농법, 지역순환 자원 활용, 자급자족형 모델에 가까운 방식이 많다. 이는 생산성과 편의성보다는 지속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농업 철학이다.

이처럼 저탄소 농업은 변화하는 기술에 유연하게 적응하며 산업적 규모화에 유리하지만, 유기농업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 노동 집약적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인증 제도와 정책 차이: 평가 기준의 명확성 여부

저탄소 농업과 유기농업 모두 공식 인증 제도가 존재하지만, 그 구조와 인증 방식은 매우 다르다.

유기농업은 ‘유기 인증’을 통해 제도화되어 있다. 인증 기준은 작물별로 매우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화학 자재 사용 여부, 토양 관리 방법, 병해충 방제 수단 등이 모두 점검 대상이다. 유기 인증은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준이 있으며, 연 1회 이상 현장 조사와 서류 검토를 통해 엄격하게 관리된다. 인증 기간도 1년 단위로 갱신되며, 위반 시 인증 취소나 과태료 부과 등의 행정 조치가 내려진다.

반면, 저탄소 농업 인증은 ‘저탄소 인증제’라는 자발적 제도로 운영되며,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정량적으로 산출하여 인증 여부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벼농사에서 중간 물떼기를 적용해 메탄을 30% 줄였다는 것이 증빙되면 저탄소 인증이 가능하다. 다만, 현재까지는 유기 인증만큼 제도화가 정교하지 않으며, 인센티브도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고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다.

요약하자면, 유기농은 무엇을 ‘사용하지 않았는가’가 기준이고, 저탄소 농업은 얼마나 ‘감축했는가’가 기준이다. 이로 인해 농민이 선택할 수 있는 농법의 폭과 방향성에도 차이가 생긴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상호 보완의 필요성

저탄소 농업과 유기농업은 반드시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설계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유기농업은 탄소 감축 효과도 일부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면 질소비료로 인한 아산화질소 배출이 줄어들고, 경운을 줄이면 토양 유기탄소가 보존된다. 실제로 일부 유기농 인증 농가들은 저탄소 농업 기준을 자연스럽게 충족하고 있기도 하다.

반대로 저탄소 농업도 유기농의 실천 방식 중 일부를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바이오차 사용, 윤작, 잡초를 활용한 자연 제초, 해충 유도식물 등은 유기농에서도 오래전부터 쓰여온 기술이다. 여기에 스마트 기술과 정밀 농업을 결합하면, 더 정교하고 효과적인 저탄소 유기농 모델도 가능해진다.

문제는 정책 설계와 현장 적용에서 이 둘을 분리하여 다룬다는 점이다. 유기농 인증을 받은 농가는 별도로 저탄소 인증을 받기 어렵고, 반대로 저탄소 인증 농가는 유기농 자격 기준에 맞추기 위해 이중 행정과 이중 보고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앞으로는 두 제도의 평가 지표를 일부 통합하거나, 상호 인증 제도를 개발하는 등 효율적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저탄소 농업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기술적 해법이라면, 유기농업은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윤리적 해법이다. 서로 다른 길이지만, 목표는 같다. 지속 가능한 농업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두 길은 충분히 함께 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