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국경세, 이제는 농업도 예외가 아니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하고 있는 가운데, ‘탄소국경세’는 국제무역의 새로운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탄소국경세는 탄소를 많이 배출한 제품에 대해 수입국이 추가적인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로, 2026년부터 유럽연합(EU)을 시작으로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그동안 제조업, 철강, 시멘트와 같은 중공업 분야가 주요 대상이었지만, 농업과 식품 분야도 규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탄소 배출이 많은 농산물은 앞으로 수출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될 수 있으며, 이는 농가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무역 구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이제 농업 부문에서도 ‘저탄소 인증 시스템’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이 글에서는 탄소국경세가 농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왜 저탄소 인증이 필요한지, 그리고 실제 현장에서 이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탄소국경세란 무엇이며 왜 시행되는가?
탄소국경세(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는 탄소 배출량이 높은 제품을 수입할 때 국내 기업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추가 과세하는 제도이다. 이는 탄소 저감 노력을 회피하려는 해외 기업의 '탄소 누출(carbon leakage)'을 방지하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도입되었다. 유럽연합은 2026년부터 철강, 시멘트, 비료, 전기, 알루미늄 등의 품목에 대해 CBAM을 적용하며, 점차 적용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농업 분야에서 탄소국경세 부과 가능성
이러한 흐름 속에서 농업 분야도 탄소국경세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농산물 자체는 아직 세금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비료, 농기계, 사료, 포장재 등 농업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중간재는 이미 규제 품목에 속해 있다. 따라서 농업 제품의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숨은 탄소 비용’으로 간주되면서 향후 농식품 전체가 세금 부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소비자와 수입업체의 탄소 인식이 높아지면서, 탄소 정보가 명시되지 않은 제품은 선택조차 받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농업 부문의 탄소 배출 구조와 문제점
농업은 식량을 생산하는 생명 산업이지만, 동시에 탄소 배출원으로도 기능한다. 논에서 발생하는 메탄, 가축 사육 시 방출되는 아산화질소, 농기계의 연료 사용, 비료 및 농약 제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 등 농업의 전 과정은 다양한 형태로 온실가스를 방출한다. 특히 가축 사육에서 나오는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28배 이상 높은 기체이며, 벼농사에서 발생하는 메탄 또한 전체 농업 배출량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농민들이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이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탄소배출량 측정 시스템이 농업에 잘 구축되어 있지 않고, 탄소 인벤토리 개념조차 생소한 것이 현실이다. 이로 인해 앞으로 탄소국경세가 확대되면 국내 농산물은 국제 시장에서 '비인증' 제품으로 분류되며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
또한,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농업 부문의 탄소 배출을 '간접적이고 미미한 문제'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그러나 EU나 미국 등 선진국은 농식품의 탄소 발자국 측정과 표기 의무화를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며, 글로벌 유통기업들도 제품 선택 기준에 탄소 지수를 포함하고 있다. 이 흐름을 따라가지 못할 경우, 수출 중심 농업은 거대한 장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저탄소 인증이란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는가?
저탄소 인증은 농산물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였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증하는 제도이다. 국내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의 기관에서 운영하며, 작물별 표준 기준을 설정하여 농가가 이에 맞는 재배 방식, 투입 자재, 물 사용량 등을 실천하면 인증을 부여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벼농사의 경우 ‘중간 물떼기’ 방식이나 ‘질소 비료 절감형 기술’을 활용하면 감축 실적이 인정된다.
저탄소 인증을 받은 농산물은 별도의 마크를 부착할 수 있으며, 일부 지자체에서는 프리미엄 가격을 적용하거나 공공 급식 우선 공급 대상으로 선정하는 등 인센티브도 제공하고 있다. 특히 향후 탄소국경세 도입 시에는 이러한 인증이 탄소 성적서(Carbon Certificate)로 기능하며, 수출 시 세금 감면 또는 규제 완화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아직까지 저탄소 인증 제도가 자율 기반이며, 강제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참여 농가 수가 제한적이며, 농민 대부분은 제도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실질적 혜택이 적다고 판단해 참여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홍보, 실질적인 보상체계, 유통망과의 연계를 통한 시장 확대 전략이 필요하다.
농업 분야 탄소국경세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
탄소국경세가 농업에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전, 우리는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먼저 농가는 자신의 농업 활동이 얼마만큼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 탄소 계산기(Carbon Calculator) 같은 디지털 도구 활용이 필수적이며, 지역 농업기술센터나 민간 컨설팅 조직과 협력해 감축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저탄소 인증을 위한 표준 기술을 습득하고, 생산 방식의 전환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더 이상 ‘농업은 제외 대상’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국제 규범에 맞는 탄소 정보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농업 부문 전용 탄소배출권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수출 중심 품목에 대해서는 의무적 저탄소 인증 제도화, 수출 국가별 탄소 규제 대응 가이드 제공, 탄소 라벨링 시스템 구축 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탄소 감축 노력에 대한 직접적인 경제적 보상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탄소 인증 농산물에 대해 이산화탄소 감축량을 환산한 후 이를 탄소배출권으로 전환하거나, 정부가 직접 탄소를 구매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탄소 절감이 단지 도덕적 행동이 아니라 실질적인 수익 활동으로 인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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