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속에서 농업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은 더 이상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상기후, 가뭄, 폭염, 장마, 병충해 등은 농민의 일상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농업 자체도 이러한 기후변화의 원인 중 하나라는 점이다.
농업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약 20%를 차지하며, 특히 벼농사에서 나오는 메탄, 가축 사육에서 발생하는 아산화질소, 농기계의 화석연료 사용 등이 그 주요 원인이다. 따라서 지금의 농업은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인 이중적인 위치에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저탄소 농업’이다. 저탄소 농업은 단순히 비료나 물을 아끼는 개념이 아니라, 농업 전반의 시스템을 기후 친화적으로 재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탄소 농업의 개념과 핵심 전략
저탄소 농업은 농업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거나, 토양이나 작물을 통해 탄소를 흡수하도록 유도하는 농업 시스템이다. 이는 국제적으로 ‘Climate-Smart Agriculture(기후 스마트 농업)’으로 불리며, 2000년대 중반부터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을 중심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핵심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온실가스 발생 억제다. 벼농사의 경우, 논에 물을 가득 채우고 재배하는 관행은 메탄가스 발생의 주요 원인이다. 이때 ‘중간물떼기’ 기법을 사용하면, 논의 산소 공급이 원활해져 메탄 발생이 억제된다. 또 가축 사육에서는 분뇨를 퇴비화하거나 바이오가스 발전에 활용함으로써 메탄과 아산화질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둘째, 토양 내 탄소 저장 기능 강화이다. 땅을 깊이 갈아엎는 전통적 경운 방식은 토양 내 유기탄소를 공기 중으로 유실시키는 주범이다. 무경운 또는 최소 경운 농법을 도입하면, 토양의 유기탄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이산화탄소 배출도 줄어든다. 여기에 바이오차(나무를 태운 뒤 생성된 탄소 고체 물질)를 토양에 혼합하면 탄소 고정 효과가 더욱 강해진다.
셋째,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의 도입이다. 드론, 자동화 센서, 스마트 관개 시스템을 활용하면 비료, 물, 에너지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 특히 스마트팜은 데이터 기반으로 필요한 자원을 정밀하게 투입해 탄소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저탄소 농업의 필요성과 시대적 흐름
기후 위기 대응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농업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탄소국경세와 ESG 경영이 부각되면서, 농산물 생산과정에서도 탄소량이 중요한 평가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6년부터 탄소 국경조정제도를 본격 시행할 예정이며, 이는 수출 농산물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 될 수 있다. 즉,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방식으로 재배된 농산물은 앞으로 수출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소비자 인식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친환경, 유기농, 지속가능성은 이제 단순한 마케팅 요소를 넘어 실질적인 구매 기준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저탄소 인증 농산물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의 일부 지자체에서는 저탄소 인증을 받은 농산물에 프리미엄 가격을 적용해 농민의 수익성을 높이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탄소 저감 실적을 기반으로 한 농가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2050 탄소중립’ 선언 이후, 농업 분야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다양한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농촌진흥청은 저탄소 농업 기술을 표준화하고, 교육 프로그램과 컨설팅을 제공하며 현장 도입을 장려하고 있다. 탄소 절감 효과가 입증된 농법은 정부 보조사업과 연계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 과정에서 농업의 경쟁력도 함께 강화될 수 있다.
도전 과제와 앞으로의 방향성
저탄소 농업이 가진 잠재력은 분명하지만,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명확하다.
첫째는 비용 문제다. 드론, 자동화 장비, 스마트 관개 시스템 등은 초기 설치 비용이 높아 중소규모 농가나 고령 농민들이 접근하기 어렵다. 정부 보조금이나 금융 지원 없이 현장에 대규모로 확산되기는 어려운 구조다.
둘째는 인식 부족과 교육의 한계다. 많은 농민들은 여전히 저탄소 농업을 단지 ‘친환경 농사’의 연장선으로 오해하거나, 복잡한 기술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장 밀착형 교육, 지역 농업기술센터의 지속적인 컨설팅, 성공 사례의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셋째는 제도적 기반 부족이다. 현재 저탄소 농업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법적 기준, 인증 체계가 미흡한 상황이다. 이는 농민이 탄소 절감 실적을 증명하거나 보상을 받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향후에는 저탄소 농업 실천에 따른 탄소 배출권 제공, 세금 감면, 추가 보조금 지급 등 구체적인 인센티브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탄소 농업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농업의 필수 전략임은 분명하다. 농민은 이제 생산자이자 환경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며, 사회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정당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기술, 정책, 소비자의 인식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저탄소 농업은 농업의 미래를 바꾸는 핵심 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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