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농사가 탄소를 배출한다고?
벼농사는 오랫동안 한국인의 식탁을 책임져온 중심 작물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벼농사 자체가 상당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농업 방식이라는 점이다.
벼는 물을 대량으로 필요로 하는 작물이고, 논에 고인 물은 산소가 부족한 환경을 만들기 때문에 미생물 활동에 의해 메탄(CH₄)이라는 온실가스가 다량 발생하게 된다. 이는 이산화탄소보다 25배 이상의 온실효과를 유발한다. 따라서 벼농사는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에 영향을 주는 농업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저탄소 벼농사 기술이다. 이 글에서는 벼농사에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주요 기술과 방법들, 그 적용 사례와 실효성, 향후 과제 등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벼농사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원인
벼농사에서 온실가스가 발생하는 주요 원인은 물 관리 방식과 유기물 분해에 있다.
대부분의 벼 재배는 논에 물을 가득 채운 상태로 유지하는 ‘담수재배’ 방식이다. 이러한 환경은 토양 내 산소를 차단하게 되고, 혐기성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다량의 메탄가스를 발생시킨다. 특히 볏짚을 그대로 논에 갈아엎어 유기물로 활용할 경우, 메탄 발생량은 더욱 증가한다. 여기에 질소 비료를 과다하게 사용할 경우, 아산화질소(N₂O)라는 또 다른 온실가스도 함께 배출된다.
이처럼 벼농사는 두 가지 주요 온실가스를 동시에 배출하는 구조이며, 이는 전체 농업 부문 탄소 배출량의 약 40% 이상을 차지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관행이 오랫동안 ‘효율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에 농민들도 문제의식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일상이 된 지금, 벼농사 또한 기술적 변화 없이는 지속가능성을 보장받기 어렵다. 결국 벼농사의 구조 자체를 재정비하고 탄소를 줄일 수 있는 혁신적이고 과학적인 농법이 필요하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벼농사 기술들: 지속가능한 쌀 생산의 미래
가장 대표적인 저탄소 벼농사 기술은 '중간물떼기'이다. 중간물떼기란 벼가 생장하는 중간 단계에서 일시적으로 논물을 빼내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논의 산소 공급이 가능해지고, 메탄을 발생시키는 혐기성 미생물의 활동이 줄어들어 메탄 배출량을 30~50%까지 감축할 수 있다. 이 방법은 벼의 생육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수확량도 기존보다 거의 차이가 없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분석에 따르면, 중간물떼기 기술은 가장 비용 대비 효율이 좋은 저탄소 기술로 분류된다.
또한, 볏짚을 바로 논에 투입하지 않고, 완전히 퇴비화한 뒤 사용하는 것도 메탄 발생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볏짚을 미처리 상태로 논에 갈아엎으면 미생물 분해 과정에서 메탄이 집중적으로 발생하지만, 퇴비로 전처리하면 그 과정이 이미 외부에서 일어나므로 논에서는 온실가스 발생이 현저히 줄어든다.
이외에도 드론을 활용한 정밀 비료 살포, 질소비료 대신 미생물 비료 사용, 직파재배(모내기 없이 바로 파종하는 방식) 등도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에 도움을 준다. 직파재배는 기계 및 인력 사용이 줄어드는 만큼 화석연료 소비량이 감소하고, 모판에서의 비닐 사용도 줄일 수 있어 간접적인 탄소 감축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전라남도 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기술을 결합한 ‘탄소 절감형 벼농사 실증단지’가 운영 중이며, 연간 약 2톤 이상의 이산화탄소 환산 감축 효과를 보이고 있다.
저탄소 벼농사 기술의 현장 적용성과 과제, 그리고 정책적 필요성
저탄소 벼농사 기술은 이론적으로 매우 효과적이지만, 현실적인 적용 과정에서는 몇 가지 도전 과제도 존재한다.
첫 번째는 농민의 인식 부족과 변화 저항감이다. 중간물떼기나 직파재배 등의 기술은 기존 관행과 다르기 때문에 농민들이 낯설어하고, 작황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도입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기술 적용을 위한 정확한 교육과 관리의 부족이다. 중간물떼기는 단순히 물을 빼는 것이 아니라 시기와 기간 조절이 중요하기 때문에 잘못 적용하면 오히려 생산량이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현장 전문가의 세심한 지도가 필요하다.
또한, 지자체나 정부의 인센티브 제공도 아직 부족하다. 일부 시범사업을 제외하면 농가가 자발적으로 저탄소 기술을 도입할 유인이 크지 않다. 메탄 감축량에 따라 탄소배출권을 부여하거나, 저탄소 쌀에 대해 프리미엄 가격을 제공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농민이 실천한 감축 노력에 대해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지속적인 참여가 가능하다.
다행히 최근에는 한국 정부와 농림축산식품부가 2050 탄소중립 전략의 일환으로 벼농사의 저탄소 기술 보급을 강화하고 있으며, ‘농업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에도 벼농사가 우선 적용 대상으로 포함되었다. 이와 함께 스마트팜, IoT 기반 자동 관개 시스템, 탄소중립형 농기계 등과 연계한 스마트 저탄소 농업도 발전하고 있다. 향후에는 이러한 기술들이 융합되어 벼농사 전 과정의 탄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발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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